본문 바로가기
음악학

칸트의 음악미학 – 감각과 이성 사이에 선 예술

by World-Wish1-Music 2025. 4. 14.
반응형

 

칸트의 음악미학 해설: 왜 음악은 예술 위계에서 가장 낮았을까?
칸트는 『판단력 비판』을 통해 예술의 위계를 설정하며, 개념 없는 감각적 예술로서 음악을 하위에 두었다. 본문은 칸트의 예술관, 미의 정의, 음악의 위치를 분석하고, 낭만주의 시대 이후 음악이 철학적으로 어떤 반박을 받았는지를 현대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칸트가 시-조형 예술-음악 순으로 예술의 위계를 설정한 이미지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무엇을 느끼고,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임마누엘 칸트는 고유한 철학적 답변을 남겼다. 그는 음악을 ‘감각적 쾌감을 주는 예술’로 보며, 이성적 사고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술의 위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두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예술을 바라보는 철학적 틀을 반영하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음악 철학과 미학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 1. 칸트의 미학,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칸트(1724–1804)는 계몽주의 시대의 중심 인물로, 인간 이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한 철학자이다. 그의 대표작인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그리고 『판단력 비판』(1790)은 각각 인식, 도덕, 미적 판단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다. 그 중 『판단력 비판』은 칸트 미학의 핵심 이론이 담긴 저서로, ‘미’와 ‘숭고’, ‘예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칸트는 이 책에서 미적 판단이란 어떠한 개념이나 목적 없이 주어진 대상을 보며 느끼는 쾌(快)의 감정이라 정의한다. 즉, 진리나 도덕처럼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판단이 아닌, ‘이해관심 없이 주어지는 보편적인 기쁨’이 미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가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단지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력과 지성의 조화’를 통해 쾌감을 유도하는 고차원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 2. 칸트의 예술 위계: 조각보다, 회화보다, 음악이 아래?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예술을 하나의 체계로 분류하고, 위계적으로 배열하였다. 그는 예술을 단순한 기술이 아닌 ‘표현의 수단과 목적의 상호작용’으로 보며, 가장 고차원적인 예술은 정신과 개념을 가장 잘 전달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예술은 '시(Poesie)'이다. 시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가장 깊이 있고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로 간주되었다. 그 다음은 회화와 조각 같은 시각 예술이다. 이들은 공간을 통해 형태와 균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이다. 그리고 음악은 청각을 통해 직접적으로 감각에 호소한다는 이유로 가장 낮은 단계에 위치하게 된다.

칸트는 음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음악은 감정의 격동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신을 지속적으로 고양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순간적인 쾌락이며, 그 자체로는 개념적이거나 도덕적 내용을 담지 못한다.”

 

그는 음악을 ‘기술적으로는 정교하지만 개념 없이 구성된 예술’로 보았다. 예술이 인간의 이성과 도덕을 자극할 때 가장 고귀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쾌락을 주는 음악은 철학적으로 미흡하다고 본 것이다.

 

🎵 3. 음악에 대한 칸트의 평가는 부당한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칸트의 이러한 음악관은 시대적 한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말, 음악은 아직 ‘예술’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오락이나 궁정 의식의 일부로 여겨졌고, 언어처럼 명확한 개념 전달이 어려운 매체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베토벤 이후의 낭만주의 시대부터 음악은 감정 표현을 넘어, 철학적 사고와 추상적 구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술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바흐의 푸가나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 말러의 교향곡은 청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형식적 대칭, 반복, 대조, 긴장과 해소 등 고도의 구조적 사고를 통해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뇌과학 연구에서는 음악이 인간의 뇌에서 언어와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되며, 감정뿐 아니라 인지 기능에도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즉, 음악은 단지 감각의 자극에 그치지 않고, 추상적 사유와 논리적 구성력을 가진 예술임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칸트가 그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음악의 이성적 측면’이 오늘날엔 점점 더 의미있게 조명되고 있다.

 

📜 4. 음악사 속 칸트 철학의 그림자

칸트의 예술 위계는 이후 수십 년간 서양 예술 철학의 기본 구조로 자리 잡게 된다. 19세기까지도 시와 회화가 지적인 예술로 추앙받았고, 음악은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하위 예술로 분류되는 경향이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당시 예술 아카데미에서는 음악보다 미술이나 문학이 더 고귀한 영역으로 취급되었고, 이는 사회적 인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며 이 위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베토벤은 “음악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철학”이라고 하며, 교향곡을 통해 인간의 운명과 자유의지를 음악에 담아 드러내었고, 바그너는 음악을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의 중심으로 보며 드라마, 문학, 무대미술과 통합된 예술로 승화시켰다. 20세기에는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존 케이지 등의 작곡가들이 음악의 경계를 철저히 해체하고, 음악 자체를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자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이는 칸트가 예술에서 강조했던 ‘형식의 자율성’과도 맞닿는 부분이다. 결국 음악은 칸트의 위계를 스스로 반박하며, 고유한 철학적 가치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 5. 현대적 시사점: 음악은 이성인가, 감성인가?

칸트의 음악미학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음악은 과연 이성과 감성 중 어디에 위치하는가? 음악은 순수한 형식미인가, 아니면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인가? 현대 철학자들과 음악학자들은 음악을 단순히 감정의 표출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은 ‘시간 위에 존재하는 건축물’이며, 청중의 인식과 해석을 요구하는 복합적 예술이라는 점에서 고차원적 사고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음악은 언어보다 더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언어는 문맥과 문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지만, 음악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감정의 반응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칸트가 말했던 ‘이해관심 없이 보편적인 쾌감’이라는 미의 정의와도 일정 부분 부합한다. 결국 음악은 감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상력과 이성의 조화를 자극하는 예술임이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칸트가 가장 낮게 평가한 예술이야말로 그가 정의한 미의 본질에 가장 가까울 수 있다.

 

📚 참고문헌

  • Kant, I. (1790). Kritik der Urteilskraft. Berlin: Lagarde.
  • 김상환. (2018). 『칸트의 미학 강의』. 문학과지성사.
  • Guyer, P. (2003). Kant’s System of Nature and Freedom: Selected Essays. Oxford University Press.
  • Goehr, L. (1992). The Imaginary Museum of Musical Works. Oxford University Press.
  • Kivy, P. (2007). Music, Language, and Cognition. Oxford.

 

📌 다음 글 예고

🎼 [시리즈 2편] 헤겔의 음악미학: 시간의 예술로서의 음악
– 칸트 이후 철학자들이 본 음악의 위상 변화
– 역사, 드라마, 내러티브와 음악의 관계 분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