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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조병화의 시, 두 작곡가의 해석: '추억' 가곡 비교 분석

by World-Wish1-Music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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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추억'은 조병화 시에 두 작곡가, 김성태와 최영섭이 각기 다른 해석을 더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두 버전의 음악적 특징과 감성 차이를 비교 분석하며, 같은 시에서 어떻게 두 가지 다른 음악 세계가 탄생했는지 살펴본다. 각 작곡가가 표현한 슬픔과 그리움의 차이를 통해, '추억'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본다.

 

 

추억하며...

 

 

 

한국 가곡 ‘추억’은 조병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이 가곡은 특이하게도 단일한 곡이 아닌,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작곡 버전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김성태최영섭 작곡의 두 버전은 가곡 애호가들 사이에서 특히 잘 알려져 있으며, 각기 다른 감성과 해석을 통해 '같은 시로 얼마나 다른 음악적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두 작곡가가 조병화의 시 ‘추억’을 어떻게 해석했고, 그것이 어떤 음악적 차이를 만들어냈는지를 심도 있게 비교 분석해보고자 한다.

 

 

1. 원작 시: 조병화의 ‘추억’

먼저, 원작 시 자체는 조병화 특유의 절제된 언어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 존재들, 그것을 기억하며 동시에 잊고자 하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이 담겨 있다.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아아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앞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나흘 닷새 엿새

여름 가고 가을 가고
나물 캐는 처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산에
아아 이 산에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앞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나흘 닷새 엿새"

 

이 시는 말하자면 ‘감정의 정화’‘상실의 수용’이라는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라는 반복되는 구절은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내적 다짐을 나타내며, 각 절에서는 자연과 사람들의 이미지를 통해 사라져 간 시간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를 바탕으로 한 가곡은 감정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으로 태어날 수 있는 여지를 지닌다.

 

 

2. 김성태 작곡 버전: 절제된 슬픔의 서정성

● 음악적 특징

김성태의 '추억'은 한국 가곡 중에서도 손꼽히는 서정적 명곡으로 꼽힌다. 그의 작곡 스타일은 단순한 선율감정의 절제를 통한 깊이 있는 표현으로 대표되며, '추억'에서도 이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반복적인 구조: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라는 구절이 반복되며 마음속 다짐과 체념을 표현한다.
  • 잔잔한 선율: 선율은 기교를 자제하고, 청자가 시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 정적인 전개: 클라이맥스를 만들기보다는, 일정한 감정선 안에서 잔잔히 흐른다.

감정적 해석

김성태의 버전은 이 시에서 느껴지는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슬픔과 다짐을 더욱 강조한다. 반복되는 "잊어버리자고"라는 구절은 청자에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내면적 갈등을 전달하며, 이는 곧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연결된다. 바다와 산,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단지 잊어야 할 존재일 뿐, 그리움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정서로 묘사된다.

● 대표 음반 및 연주

  • 백남옥의 《우리 가곡집》
  • 조수미의 독창회에서도 종종 선택됨
  • 유튜브, 멜론 등에서 다수 음원 서비스 중

https://www.youtube.com/watch?v=JxsHwjOFIME

베이스 연광철 - 추억 (김성태 곡)

 

https://www.youtube.com/watch?v=SOGtQ80P9UU

메조 소프라노 - 백남옥 (김성태 곡)

 

 

3. 최영섭 작곡 버전: 구체적 풍경과 회상의 정서

● 음악적 특징

최영섭의 작곡은 김성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된다. 그는 ‘그리운 금강산’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로, 보다 드라마틱하고 묘사적인 작곡 기법을 활용한다.

  • 강한 선율의 흐름: 시의 각 구절마다 선율이 뚜렷하게 달라지며, 장면의 전환을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 묘사 중심의 구성: 송도의 갯벌, 서해의 낙조와 같은 작곡가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으며, 풍경의 감각적 재현이 두드러진다.
  • 강약의 명확한 대비: 정서의 고조와 절제가 음악적으로 표현된다.

● 감정적 해석

최영섭은 이 시를 단지 ‘잊으려는’ 시가 아니라, 기억을 소환하고 마주하는 회상의 시로 본다. 그의 '추억'은 상실보다 그리움의 여운이 더 짙게 드러나며, 눈앞에 그날의 장면이 펼쳐지는 듯한 감각을 준다. 특히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 "앞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 같은 가사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풍경 묘사는 그리움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든다.

● 대표 음반

  • 국립합창단 음반, 성악 콩쿠르 무대에서 연주된 사례 다수
  • 전통 성악 중심 무대에서 주로 소개됨

https://www.youtube.com/watch?v=zAf7qhF2Hes

박혜상 - 추억 (최영섭 곡)

 

https://www.youtube.com/watch?v=-aFgdr4buwc

전여진 - 추억

 

 

4. 비교 분석: 두 버전의 감성 차이

요소 김성태 작곡 최영섭 작곡
정서 중심 절제된 슬픔과 내면적 다짐 생생한 회상과 감각적 풍경 묘사
선율 구성 단순, 반복적, 내성적 극적, 묘사 중심, 외부 풍경 강조
시 해석 방식 기억을 지우려는 노력 기억을 떠올리고 음미하는 정서
대표 성악가 백남옥, 연광철 등 국립합창단, 콩쿠르 출신 성악가 다수
음악적 느낌 정적이고 서정적인 명상 역동적이며 장면 전환이 두드러지는 구조
 
 

한 편의 시에서 피어난 두 개의 음악 세계

가곡 ‘추억’은 한국 가곡의 깊이와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성태의 버전은 감정을 정제하고 내면화하는 한국적 미학을 따르고, 최영섭의 버전은 드라마와 묘사를 중시하는 표현적 접근을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같은 시에서 출발했지만, 감정의 선율이 어떻게 전혀 다른 색채로 변주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추억’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삶의 기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노래이다. 그리고 이 곡을 통해, 음악이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기억, 시간, 상실, 그리움의 심리적 작용까지도 표현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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