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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고향을 부르는 노래, 김동진의 가곡 <가고파>: 역사와 감동의 선율

by World-Wish1-Music 202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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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의 가곡 <가고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아름답게 표현한 한국 가곡의 대표작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이 곡은 고향의 풍경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으며, 민족적 정서를 엮어낸 명곡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고파>의 역사적 배경과 가사 및 선율의 조화를 통해 감동을 전합니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한국 가곡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중 하나인 <가고파>는 단순한 향수의 노래를 넘어, 민족의 상처와 그리움을 동시에 품은 명곡이다. 이 곡은 시인 이은상의 고향을 향한 애틋한 시에 작곡가 김동진이 선율을 입혀 탄생했으며,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특히, 곡이 지닌 서정성과 시적인 언어, 그리고 시대적 아픔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감동은 이 곡을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사랑받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1. 시대의 아픔에서 태어난 명곡

<가고파>의 시는 일제강점기라는 참혹한 시대에 쓰였다. 이은상은 자신의 고향인 경상남도 마산을 그리며, 머나먼 타지에서 조국과 가족,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슬픔을 시로 풀어내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라는 첫 구절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고향에 대한 간절함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1933년, 김동진은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이 시에 곡을 붙였다. 이 시점은 조국을 빼앗기고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던 시기였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가고파>가 단순한 개인의 노래를 넘어 집단적 감정의 언어가 되게 하였다. 이후 이 곡은 테너 이인범이 일본 성악 콩쿠르에서 불러 주목을 받으며 널리 알려졌고, 한국전쟁 후인 1973년 김동진이 후편을 작곡하면서 하나의 완성된 장시가 되었다.

 

 

2. 시와 선율의 조화: 감정을 관통하는 예술성

<가고파>의 진정한 감동은 시와 음악이 이룬 긴밀한 조화에서 나온다. 김동진은 단순히 시에 선율을 붙인 것이 아니라, 시 속 정서의 흐름을 정밀하게 따라가며 음악으로 감정의 결을 입혔다. 특히 이 곡은 통절 형식(through-composed)으로, 반복되는 형식 없이 각 절마다 새로운 선율이 이어진다. 이로 인해 시 속의 변화하는 정서—그리움, 아련함, 쓸쓸함, 간절함—이 음악적으로도 섬세하게 구현된다. 전주에서부터 피아노가 묘사하는 푸른 바다의 이미지, 그리고 첫 소절에서 드러나는 담백하지만 깊은 정서적 울림은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반복되는 후렴구 “가고파라, 가고파”는 단순하지만 절절하다. 이는 단순한 텍스트의 반복이 아닌, 감정이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흐름을 형성한다. 마치 울음을 참던 이가 마침내 감정을 토해내듯, 음악은 시의 감정을 증폭시키며 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t5j70RkbBpU

가고파 (이은상 시 / 김동진 곡) Ten.김승직

 

 

3. 민족적 정서와 개인적 향수의 이중성

이 곡은 개인적인 고향의 그리움에서 출발하지만, 점차 민족 전체의 감정으로 확장된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고파>는 자신을 대변하는 음악이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었는지를 되짚는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졌다. 실제로 김동진은 한국전쟁 중 월남하다가 피난민 신분 확인을 받지 못해 위기를 겪었는데, 이때 자신이 작곡한 <가고파>를 불러 목숨을 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는 <가고파>가 한 개인의 정체성과 직결될 만큼 강력한 상징성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YK1OhSc_Kk

가고파 (이은상 시 / 김동진 곡) Sop.조수미

 

 

 

4. 전편과 후편의 감정 곡선

전편은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해, 점차 고향과 친구에 대한 아련한 기억으로 흐른다. 후편은 보다 구체적인 어린 시절의 장면들—모래판에서 달음질하던 추억, 망둥이 잡던 기억—을 통해, 회상 속에서도 현실의 쓸쓸함이 짙게 배어든다.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라는 대목에서 감정은 절정에 이르는데, 이는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갈등과 절망, 체념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다. 이처럼 전편은 고향을 바라보는 감정의 여운이라면, 후편은 현실 속에서 고향을 향한 염원이 더욱 절박해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5. 감상 포인트와 오늘날의 의미

<가고파>는 음악적으로도 매우 서정적이며,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가 큰 특징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멜로디 속에 담긴 정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시와 음악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농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며, 이 곡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고향과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날, <가고파>는 단순히 향토적인 정서를 담은 가곡으로서가 아니라, 분단과 이산, 그리고 공동체의 해체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감정의 통로이다. 디아스포라의 시대, ‘고향’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가고파>는 그 감정을 여전히 생생하게 불러일으킨다.

 

https://www.youtube.com/watch?v=3VcECo_kXk4

Kagopa. Añoranza. 가고파 . Soprano : Urszula Bardlow

 

 

 

맺음말

김동진의 <가고파>는 한 편의 시가 음악과 만나 어떻게 시대의 노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이 곡은, 뛰어난 선율과 시적 언어의 조화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응축하고 있으며, 그 감동은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있다. 고향을 떠난 이들, 혹은 돌아갈 고향이 없는 이들 모두에게 <가고파>는 하나의 정서적 귀향이자 음악적 안식처로 남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r-Q9jAZACI

가고파 - 수원시립합창단 &지휘 이상길 (이은상 시,김동진 곡)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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