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내가 잠들 때 「Oh! quand je dors」– 리스트가 노래한 사랑의 환상

 

 

프란츠 리스트가 빅토르 위고의 시에 붙인 낭만적 가곡 ‘Oh! quand je dors’의 서정성과 음악적 특징을 분석하고, 꿈과 사랑이 교차하는 환상적 분위기를 소개합니다.

 

 

Franz Liszt(1811-1886)의 「Oh! quand je dors」는 Victor Hugo(1802–1885)의 시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어 가곡으로, 낭만주의 음악과 문학이 아름답게 융합된 대표적인 예다. 사랑하는 이의 존재를 꿈속에서 그리는 이 곡은 서정성과 환상성, 그리고 섬세한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낭만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1. 작품 배경

리스트는 1840년대 초,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시에 감명을 받아 여러 편의 가곡을 작곡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Oh! quand je dors」는 1842년에 작곡되었고, 1859년에 개작된 두 번째 버전이 오늘날 널리 연주된다. 이 곡은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곡 외에도 성악 가곡이라는 장르에서 얼마나 풍부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0_bv-6c19A

Barbara Bonney y al piano, Malcom Martineau "Oh! quand je dors" Lied de Frans Liszt (1811-1886) Poema de Victor Hugo (1802-1885).

 

 

2. 시 원문과 번역

이 곡의 가사는 빅토르 위고의 1830년 시집 『Les Rayons et les Ombres(빛과 그림자)』에 수록된 시 중 하나로, 잠든 화자가 사랑하는 이의 환상을 꿈꾸는 내용이다.

Oh! quand je dors, viens auprès de ma couche,
Comme à Pétrarque apparaissait Laura...

오! 내가 잠들 때, 내 침대 곁에 와 줘요,
마치 페트라르카에게 로라가 나타났듯이...

 

시 전반에는 이상화된 여성의 이미지와 함께 현실과 꿈의 경계가 허물어진 낭만주의적 분위기가 감돈다.

 

3. 음악적 특징

리스트는 위고의 시에 담긴 정서와 이미지를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피아노 반주와 풍부한 선율로 그려낸다.

▪ 서정성과 환상성

가사에 맞춰 멜로디는 부드럽고 느릿한 선율로 시작하며, 꿈결처럼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피아노 반주는 잔잔하게 흐르다가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에서는 급격히 격정적으로 변화한다.

▪ 화성의 예술

이 곡은 낭만주의 특유의 자유로운 전조와 3도 관계 조성 변화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D-flat 장조에서 시작하여 중간에 이조 된 후 다시 원조로 돌아오는 흐름은 꿈속의 불확실함과 회복을 암시한다.

▪ 다이내믹과 표현 지시어

‘dolce(달콤하게), espressivo(표현적으로), con amore(사랑을 담아)’와 같은 다양한 표현 지시어가 사용되어, 연주자와 성악가 모두에게 높은 표현력을 요구한다.

 

4. 곡 해석 및 상징성

「Oh! quand je dors」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다. 위고의 시에서 여성은 로맨틱한 이상형이자, 예술적 영감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리스트는 이 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음악에 옮겨, 사랑과 예술, 현실과 환상 사이의 긴장감을 음악적으로 풀어낸다.

▪ 잠이라는 소재

‘잠’은 단순한 신체적 휴식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해 이상적인 존재를 만나는 통로로 그려진다. 이 잠든 상태는 죽음의 은유이기도 하며, 그만큼 절대적인 갈망과 헌신을 내포한다.

▪ 여성에 대한 숭배

위고의 시와 리스트의 음악에서 여인은 이상화된 존재로, 성스러움에 가까운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는 낭만주의의 핵심 정서인 ‘플라토닉 러브’와 깊은 관련이 있다.

 

5. 성악 레퍼토리로서의 가치

이 곡은 프랑스 가곡(Mélodie)의 대표작 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수많은 성악가들이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특히 리릭 테너, 소프라노에게 적합한 곡으로, 감정 표현과 프레이징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만큼 기교와 해석력이 균형을 이루는 곡으로 평가된다.

 

사랑의 꿈과 낭만주의 미학의 절정

「Oh! quand je dors」는 리스트와 위고, 두 낭만주의 거장의 감성과 사유가 맞닿아 탄생한 걸작이다. 사랑, 꿈, 예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 감정의 깊이를 섬세하게 음악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단순한 가곡을 넘어선 예술적 울림을 전한다. 리스트의 이 가곡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의 핵심 정서에 잠시나마 몸을 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