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산 엘레지'*는 부산의 용두산과 194 계단을 배경으로 한 슬픈 트로트 명곡입니다. 이 곡의 음악적 특징과 문화적 의의를 통해 그 시대의 애환과 감정을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부산의 한복판, 용두산공원의 194 계단을 걸어본 이라면 누구나 느낀다. 그 길 위에는 바람만 부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사랑의 숨결과 그리움의 흔적이 배어 있다는 것을. 그 감정을 아름답고도 애달프게 노래한 곡이 있으니, 바로 1964년 발표된 트로트 명곡 ‘용두산 엘레지’다. 이 곡은 단순한 이별 노래가 아니다. 피란민의 아픔, 전쟁 후 부산이 지닌 시대의 그림자, 그리고 그 안에 피어난 청춘의 사랑을 압축한 음악적 유산이다. ‘엘레지(elegy)’라는 말이 함축하듯, 이 노래는 죽은 사랑과 사라진 시간을 위한 애도의 시이며, 동시에 수많은 이들의 삶의 증언이다.
1. 노래의 탄생: 전쟁과 도시, 사랑이 만난 자리
‘용두산 엘레지’는 고봉산이 작곡하고 최치수가 작사했으며, 고봉산 본인이 직접 불러 그 감정을 진하게 전달한 트로트 곡이다. 발표 당시 한국 사회는 6·25 전쟁 이후 재건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특히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장소가 바로 ‘용두산’과 ‘194 계단’이다. 이 계단은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이루어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남긴 눈물이 밴 곳이다. 이처럼 ‘용두산 엘레지’는 장소성과 시대성을 동시에 품은 드문 트로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 가사에 깃든 상징: 사랑, 이별, 그리고 기억의 계단
가사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농축되어 있다:
“한발 올려 맹세하고 / 두발 디뎌 언약하던 / 한 계단 두 계단 / 일백구십사 계단에…”
이 구절은 단지 특정 장소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약속과 현재의 고독 사이의 간극을 표현한다. 계단이라는 수직적 공간은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며, 올라갈수록 멀어지는 사랑,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을 비유한다. 이처럼 ‘용두산 엘레지’는 물리적 공간을 감정의 은유로 승화시킨 노래이다. 사랑은 맹세로 시작해 이별로 끝나고, 그 모든 것이 계단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uET6TANdLQ&t=1s
3. 음악적 구조와 감정의 흐름
이 노래의 멜로디는 전통 트로트의 구성을 따르면서도, 감정의 굴곡을 따라 고저장단을 세심하게 설계했다. 초반에는 비교적 낮은 음역에서 시작해, 후렴부에 가까워질수록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는 사랑의 절규와 그리움이 고조되는 과정을 음악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특히 고봉산의 창법은 ‘대화하듯이 부르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치 용두산과 말하는 듯한 화자의 목소리는, 청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트로트 특유의 꾸밈음과 떨림 창법은 이별의 애잔함을 극대화하며, 듣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4. 부산의 역사와 이 노래가 만나는 지점
‘용두산 엘레지’는 단순한 개인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선다. 이 곡은 한국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생존하고, 사랑하고, 헤어진 수많은 청춘의 감정을 대변한다. 특히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수한 역사와 맞물려, 이 노래는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 곡은 부산의 용두산공원을 관광지 이상의 ‘기억의 공간’으로 만든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 계단은 이제 단순한 돌계단이 아닌,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사랑과 이별의 상징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akSyV3V538
5. 계속되는 감동: 리메이크와 세대 간의 공감
이 노래는 세월을 넘어 다양한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왔다. 하춘화, 나훈아, 주현미, 송가인 등 한국 트로트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 곡을 부르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각각의 버전은 그 시대의 정서와 스타일을 반영하면서도, 원곡이 지닌 ‘시대의 눈물’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용두산 엘레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대중과의 정서적 연결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음악 유산이다.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계속 울린다
‘용두산 엘레지’는 단순한 트로트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슬픔이자, 한 도시의 기억이고, 모든 이별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집단적 감정의 표상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이 노래가 주는 울림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이 있었고, 그리움이 남아 있으며, 음악은 그것을 잊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계절, 용두산을 거닐 기회가 있다면, 194 계단을 오르며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보자. 사랑도, 이별도, 그때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I6dRiY1uhSY
https://www.youtube.com/watch?v=As_9dPxJC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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